이 글의 순서
먼저 답하면
1939년 파리에서 호아킨 로드리고와 빅토리아 캄히는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피아노를 팔았습니다. 그해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완성했습니다. 기타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악보를 남기기까지, 두 사람은 점자를 쓰고 음표를 받아 적고 함께 교정했습니다.
본문
파리에서 만난 두 음악가
로드리고는 스페인 사군토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디프테리아를 앓은 뒤 시력을 거의 잃었고, 발렌시아에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기타 협주곡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1927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폴 뒤카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음악을 적고 책을 읽는 일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곁에서 비서와 필사 일을 맡은 라파엘 이바녜스는 문학과 철학을 읽어 주었고, 로드리고는 그를 자신의 눈을 대신해 준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빅토리아는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파산하면서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피아노 선생의 도움으로 공부를 이어 갔고, 파리에서 음악 교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때는 1928년이었습니다. 빅토리아의 아버지는 시각장애가 있고 수입도 불안정한 음악가와의 결혼에 반대했습니다. 두 사람은 가족의 반대와 한 차례의 헤어짐을 겪은 뒤, 1933년 발렌시아에서 결혼했습니다. 이후에도 생활비가 부족해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결혼한 뒤 빅토리아는 자신의 피아니스트 활동을 접고 남편의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독일어에 익숙했던 그는 노랫말을 번역하고 공연 작품의 대본을 썼습니다. 발레 파바나 레알과 후아나 이 로스 칼데레로스, 서정 희극 엘 이호 핑히도에도 그의 글이 쓰였습니다. 사해 문서의 글을 노래로 만들기 위해 시로 고쳐 쓰기도 했습니다. 로드리고가 세르반테스와 우나무노의 글에 붙인 음악을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옮기는 일도 맡았습니다. 부부는 음표와 가사를 함께 다뤘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받은 기타 협주곡의 주문
아랑후에스 협주곡의 주문은 1938년 9월 산세바스티안의 식사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로드리고가 남긴 글에 따르면, 기타리스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는 프랑스로 돌아가는 그에게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오래 품어 온 소망이라며 로드리고를 설득했고, 로드리고는 리오하 와인을 마신 뒤 쓰겠다고 답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그는 이 식사를 불안한 시기에 얻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겼습니다.

작곡가가 회상한 순서도 흥미롭습니다. 그 부탁을 받은 지 두 달쯤 뒤, 파리 생자크 거리의 작은 작업실에서 아다지오의 선율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고 썼습니다. 곧이어 마지막 악장의 주제도 떠올랐습니다. 반면 첫 악장은 계산하고 숙고하며 완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연주할 때 가장 먼저 듣는 악장을 가장 나중에 썼습니다. 작품은 1939년 파리에서 완성됐고, 부부가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짐 속에는 점자로 쓴 협주곡 원고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 남쪽에 있는 왕실의 옛 여름 궁전과 정원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로드리고와 빅토리아는 신혼 때 그곳을 함께 걸었습니다. 빅토리아는 훗날 아다지오를 설명하며 그 산책과 행복했던 신혼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빅토리아의 회고록에는 이 음악을 사랑의 노래라고 부른 설명도 나옵니다. 부부가 함께 걸었던 장소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을, 빅토리아는 오래 지난 뒤 두 사람의 생활을 기록하는 책에서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피아노를 팔아야 했던 해
두 사람의 형편은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면서 더 어려워졌습니다. 로드리고가 파리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던 장학금이 중단됐습니다. 부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시각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스페인 난민으로 지내며, 자신들의 방에서 스페인어와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 로드리고는 검은 숲의 새소리를 연구했고, 뻐꾸기의 노래라는 곡도 썼습니다. 한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도 그는 주변의 소리를 듣고 노랫말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을 이어 갔습니다.
1939년 빅토리아는 임신 중 아이를 잃고 자신도 위중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부부는 치료비를 내기 위해 아끼던 플레옐 피아노를 팔았습니다. 빅토리아의 회고록에는 집주인 아말리아 카라스코가 기억한 일도 나옵니다. 아내가 병원에 있던 때 로드리고가 밤에 피아노를 치며 슬픈 선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플레옐 피아노는 빅토리아가 부모님에게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을 팔았다는 기록은 당시 부부가 겪은 경제적 어려움을 분명하게 전합니다.
점자 원고가 연주자의 악보가 되기까지
로드리고는 점자 악보로 곡을 썼습니다. 연주자에게 악보를 건네려면 이를 일반 악보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전문 필사자에게 악기별로 음표를 하나씩 불러 주었습니다. 음의 높이와 길이, 올림표와 내림표 같은 세부 표시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필사자는 이 설명을 오선에 적었고, 로드리고는 빅토리아와 최종 교정을 했습니다. 협주곡의 여러 악기 파트를 옮기는 작업에는 같은 음악을 점자와 구술, 오선 악보로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필사 악보 한 부를 사인스 데 라 마사가 받아 초연을 준비했습니다. 작곡가가 쓴 점자 악보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로드리고의 점자 원고 곁에는 라파엘 이바녜스와 전문 필사자, 빅토리아가 옮겨 적은 악보가 있었습니다. 필사자에게 불러 줄 때는 악기별로 파트를 설명했고, 빅토리아와는 최종 교정을 했습니다. 작곡가가 머릿속에 구성한 기타와 관현악의 음악을 실제 연주자가 읽을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이 음표와 표시를 적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잉글리시 호른에서 기타로 이어지는 선율
아다지오의 첫 선율은 기타가 아닌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합니다. 기타는 화음을 뜯으며 그 선율을 받쳐 준 뒤, 같은 구절을 장식해 이어받습니다. 잉글리시 호른과 기타는 주제를 나누어 연주하고, 기타는 나중에 주제 전체를 혼자 연주합니다. 이어지는 카덴차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반주 없이 독주자가 긴 악구를 펼칩니다. 그 뒤 오케스트라가 크게 주제를 연주합니다. 독주자의 작은 소리로 시작한 대화가 여러 악기의 합주로 확대되는 순서입니다.


이 선율의 굴곡은 안달루시아의 깊은 노래, 칸테 혼도와도 연결해 들을 수 있습니다. 곡의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는 여섯 박을 셋씩 두 묶음으로 세기도 하고, 둘씩 세 묶음으로 세기도 합니다. 기타가 줄을 쓸어 내리며 제시한 리듬을 오케스트라가 받아 연주합니다. 가운데 악장의 긴 선율과 양쪽 악장의 춤 리듬을 함께 들으면 협주곡의 구성이 분명해집니다. 아다지오는 마지막에 짧은 장조의 마무리와 기타의 트릴로 끝납니다.
바르셀로나 초연과 마히나의 재생목록
협주곡은 1940년 11월 9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당에서 처음 연주됐습니다. 사인스 데 라 마사가 기타를 맡고 세사르 멘도사 라사예가 바르셀로나 필하모닉을 지휘했습니다. 파리에서 점자로 쓴 음악을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게 된 날입니다. 빅토리아는 병에서 회복했고, 이듬해 딸 세실리아를 낳았습니다. 부부가 피아노를 판 뒤에도 작곡과 공연 준비를 이어 갔다는 기록은, 이 협주곡이 완성되고 초연되기까지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마히나 런치 목록에서 아다지오는 제임스 골웨이 플레이스 로드리고 음반으로 만납니다. 이 음반에는 플루티스트 골웨이와 기타리스트 야마시타 가즈히토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야마시타가 장 프랑수아 파야르 실내악단과 녹음했습니다. 골웨이는 기타를 위해 쓴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플루트로 편곡해 연주했습니다. 두 사람은 로드리고의 음악을 각각 기타와 플루트로 전했습니다. 음반에는 골웨이가 연주한 전원 협주곡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런치와 디너 목록에 함께 있는 나르시소 예페스도 이 작품의 보급에 중요한 공연을 남겼습니다. 1950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아타울포 아르헨타가 지휘하는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초연에서 1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부부의 딸 세실리아는 이후 출판사를 세우고,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붙인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재단은 작곡가의 원고를 보관합니다. 빅토리아와 호아킨이 함께 만든 악보를 다음 연주자에게 전하는 일은 가족의 다음 세대로 이어졌습니다.
마히나에서 듣는 음악
마히나의 점심과 저녁 음악에는 나르시소 예페스가 연주한 아랑후에스 협주곡의 발췌곡이 있습니다. 기타 선율이 들릴 때, 점자를 음표로 옮기고 함께 악보를 교정했던 로드리고와 빅토리아의 이름을 나란히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